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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종의기원을 읽고.

 

 

처음엔 제목을 보고 끌렸다. 첫장을 넘겨 읽기 시작하니 제목과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은 소설이 시작됐다. 왜 제목을 종의기원이라고 했을까, 궁금증을 안은채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유진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조종당하고 있다고 느끼며, 답답합을 느낀다. 그의 엄마와 이모는 유진을 자꾸만 통제하려 하고, 유진은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벗어나고 싶은 것으로 여긴다. 유진은 가끔씩 발작증세를 겪는데, 아마 그것때문에 엄마는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겠지만, 평생 그러한 통제 하에 살고 싶지 않은 유진은 몰래 약 먹기를 중단하곤 한다. 그 약은 정신과 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준 약이었다.

 

어릴적 유진에게는 쌍둥이 형이 있었다. 형은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고, 반면 유진은 아주 과묵한 아이였다. 어릴적 유진은 형보다 우월한 것이 거의 없었지만, 수영만큼은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수영을 배우고, 정식으로 선수로서 활동하면서 각종 상도 휩쓸만큼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제법 세간의 관심을 얻은 수영계의 유망주였던 유진은 어느날 먹던 약을 중단하고 최고기록을 세운다. 약을 먹지 않으면 더 좋은 컨디션으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발작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게된다. 하지만, 유진의 마지막 수영선수로서의 경기는 경기중 발작이 찾아오면서 끝이 난다. 당시 엄마와 이모는 아주 단호하게 유진의 수영선수로서의 미래를 차단시켜버렸다.

 

그 이후로 유진은 우연한 기회로 법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법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런 유진에게는 해진이라는 친구가 있다. 해진은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친구였는데, 유진의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할아버지가 치이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일로 유진의 엄마와 해진은 처음 만나게 된다. 해진은 유진의 쌍둥이 형을 꽤 닮은 아이였다. 엄마에게는 해진과의 만남이 아마 많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 유진은 생각한다. 해진의 할아버지가 죽은 이후, 엄마는 해진을 양아들로 삼는다.

 

유진의 쌍둥이 형인 유민은 유진이 어릴때 죽었다. 온가족이 목포로 여행을 떠난날 밤, 유민과 유진은 바닷가의 종탑까지 먼저 도착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 먼저 종탑에 오른 유민은 사고로 바다에 떨어지게 되고, 그런 유민을 구하기 위해 바다속에 뛰어들었던 아빠까지 그날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그 사고를 목격한 엄마는, 평생 오해를 한다. 유진이 유민을 밀어 떨어뜨렸다고.

 

유진의 엄마는 유민과 유진이 어릴 때, 정신과 의사인 동생으로부터 유진이 불안하다는 얘기를 듣게된다. 같은 학원을 다니는 여자아이의 그림을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여 그린 그림을 보고, 유진에게 정신적인 이상이 있진 않은지 검사를 권유한다. 그러나 당시 유진의 엄마는 매우 불쾌하게 느끼며 이를 거부한다. 그러나, 유민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있은 후 유진의 엄마는 동생을 찾아 검사를 하게 한다. 결과, 유진의 이모는 유진이 싸이코패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소설의 첫 시작부터 전개되는 현 시점의 흐름을 보면, 유진은 잠에서 깨어 집의 1층으로 내려와 엄마의 시체를 발견한다. 엄청난 피웅덩이의 흔적과, 자신의 몸에 바짝 말라붙은 핏덩이들을 보며 사라진 기억을 더듬는다. 지난밤 바깥을 달리다 돌아왔고, 아마 엄마 몰래 옥상을 통해 나갔다 들어오는 과정에서 엄마에게 들켰다면 아마 분명 엄마의 잔소리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벌쳐진 상황이 이해되진 않는다. 연신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다가 끝내 엄마의 죽음을 이끈 장본인은 유진 자신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유진은 엄마의 사체를 숨기고 범죄장소를 청소하고, 해진의 눈을 속인다. 그리고 바깥에 의문의 여성 살인 사건이 일어난 소식을 듣게 된다. 의아하게도 현관에서 진주귀걸이 하나를 발견하게 되고, 집근처 호떡집 사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살인사건의 피해자 여성이 하고 있던 귀걸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귀걸이와 형태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진은 그동안 밤의 질주를 몇번 하였다. 발작전구증세로 비틀거리던 자신에게 눈구멍에 오뎅 박았냐며 욕을 하고 지나간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귓구멍에 오뎅 박았냐며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이야기를 하는 여성을 보게 된다. 유진은 그 순간 분노를 느끼며 의도적으로 그 여성을 뒤쫓는다. 여자가 멈추면 멈추고, 다시 걸으면 걷고, 보폭을 맞추며 여성에게 두려움을 준다.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을 보며 유진은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 이후 유진은 그 쾌감을 느끼고 나면 한동안은 약을 먹지 않아도 발작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 유진은 그 이후 또 전망대에 가고, 버스에서 내리는 여성의 뒤를 쫓는 일을 한다. 하지만 언젠간 이러한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은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면도칼을 챙겼다. 그렇게 그날 뒤쫓던 여성에게로부터 피비린내를 느낀 순간 유진은 그녀를 잡아 당겨 면도칼로 목을 그어 죽인다. 그 모습을 유진의 엄마가 목격하게 되고, 유진은 곧장 도망친다. 그리고 새벽 집으로 돌아오다가 엄마와 마주친 것이다. 유진은 엄마와의 실랑이 끝에 엄마마저도 면도칼을 이용해 죽이고 만다. 

 

유진은 계속해서 자신의 사라진 기억을 더듬는다. 그 과정 속 엄마의 방에서 엄마의 메모비슷한 일기를 발견한다. 역순으로 된일기를 읽어나가며 자신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다. 수영의 기회를 박탈한 자가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는 것, 유진의 인생이 송두리째 통제받게 된 이유가 됐던 그날의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이모에 대한 분노는 결국, 엄마의 부재를 의심하며 방문한 이모까지도 죽이게 된다.

 

유진은 그날, 자신이 형을 죽인것이 아니고, 단지 사고였을 뿐이라는 것을 엄마에게 해명할 수 있었더라면 오늘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송두리째 통제당하지는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에 해진은 결국 엄마와 이모를 유진이 죽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진에게 자수를 권유하고, 유진과 함께 나선다. 유진은 마지막으로 전망대를 가고싶다고 말한다. 해진은 유진의 말을 들어 전망대로 차를 몰고, 유진은 그때 해진을 제압하며 엑셀을 밟아 절벽으로 차를 세게 몬다. 차는 곧장 절벽 아래 바다로 떨어졌고, 유진은 미리 열어두었던 창문으로 탈출한다. 유진은 그렇게 살아 남아 1년간 고깃배생활을 한다. 해진은 그 때 죽었고, 유진이 저지른 모든 살인은 해진이 뒤집어썼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 알게 된다.

 

책에서 유진의 이모는 유진을 싸이코패스, 포식자라고 부른다. 이런 유형의 아이들은 자신에게 이로운것과 해로운것 두가지로만 느낀다고 한다.

 

책 제목인 종의기원은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리게 한다. 유진은 과연 포식자로서 강한 종에 속하는 걸까. 악을 기반으로 강한 종이 살아남는데 더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꼭 살인, 싸이코패스,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로 비유할 필요 없이 일상속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강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목숨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내 뒤에 두어야 한다. 과정만큼이나 결과도 중요하기에, 이기는 싸움을 해야만 한다. 간혹 내 뒤에 처진 사람을 돌아보며 안타까워할 겨를은 없다. 이겼으면 앞에 또 다른 이겨야 할 목표가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강해진다. 강해질수록 기고만장해지고, 냉정해진다.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치부하고 넘어가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짓밟힌다.

 

그런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성공일까. 아니면 후회하게 될까.

 

더 좋은 것을 가지고 나면 그 과정은 어떤 형태일지라도 사람을 죽이는 수준만 아니라면 괜찮은 것일까.

내가 그 과정의 희생자가 될지라도 더 좋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괜찮은 것일까.